사귀는 사이였다 — 그래도 교실에서의 접촉은 학교폭력이었다
수사기관은 강제추행 혐의없음으로 결론냈고, 소년보호사건은 심리조차 열리지 않았습니다. 1심과 2심도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뒤집었습니다.
1무슨 일이 있었나
A학생과 B학생은 2023년 중학교에 입학해 같은 반이 되었고, 이후 이성교제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서로 성적인 농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해 4월, A학생이 SNS에 B학생과의 성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면서 이를 증명하겠다며 혈흔으로 보이는 물질이 묻은 티슈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5월 22일에는 수업시간에 B학생의 의사에 반해 신체를 만지고, B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를 만지게 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B학생의 뒷목과 머리채를 잡았습니다.
B학생은 5월 23일 A학생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수사기관에도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6월 7일 명예훼손과 폭행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신체접촉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는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결정했습니다.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된 부분도 9월 법원의 심리 불개시 결정으로 끝났습니다.
민사소송에서 1심과 2심은 명예훼손과 폭행만 인정하고, 수업시간 신체접촉은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A학생이 강제추행의 고의를 가지고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 2023. 3.중학교 입학, 같은 반 배정 후 이성교제 시작
- 2023. 4. 12.A학생, SNS에 성관계 관련 게시물과 티슈 사진 → 명예훼손
- 2023. 5. 22.수업시간 중 신체접촉 — 이 사건의 핵심 쟁점
- 2023. 5. 23.뒷목·머리채를 잡는 폭행 / 같은 날 B학생이 학교폭력 신고
- 2023. 6. 7.경찰, 명예훼손·폭행은 혐의 인정 / 강제추행은 혐의없음
- 2023. 9. 21.소년보호사건 심리 불개시 결정
- 2025. 12. 11.대법원, 원심 파기환송 — 학교폭력(성폭력) 인정
2무엇이 다투어졌나
- ① 학폭예방법 제2조 제1호에 열거된 유형에 딱 들어맞지 않으면 학교폭력이 아닌가
- ② 수사기관이 혐의없음으로 결론냈으면 민사책임도 없어지는가
- ③ 사귀는 사이여서 평소 신체접촉을 용인했다면, 그 뒤의 접촉도 모두 동의한 것인가
3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열거는 한정이 아닙니다. 제2조 제1호에 나열된 유형에 한정되지 않고, 이와 유사하거나 동질의 행위로서 학생의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성폭력의 경우 형사처벌 대상에 이를 정도가 아니어도 피해학생의 의사에 반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면 학교폭력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지도이념·증명책임·증명의 정도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됩니다. 형사에서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민사책임이 부정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판단은 세 번째였습니다. 대법원은 평소 동의가 그때의 동의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성교제 관계였고 평상시 신체접촉을 용인했더라도, B학생은 신체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주체로서 자신이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접촉을 거부할 권리를 가집니다. 사적인 공간에서 친밀했다는 사정만으로 교사와 같은 반 학생들이 언제든 볼 수 있는 교실에서의 접촉까지 허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기록도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B학생은 “손을 들어서 치웠고 이런 행위가 수업시간 내내 반복됐다. 처음에는 밀어내거나 하지 말라고 하면 손을 뗐는데, 나중에는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만졌다”고 진술했습니다.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 다른 친구들이 듣게 되면 자신의 이미지만 안 좋아질 것 같아 참았다”고 답했습니다.
A학생은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대법원은 거부 의사와 성적 불쾌감을 인지할 수 있는 충분한 지적 능력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4교실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나
- “수사기관에서 무혐의가 나왔다”는 주장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 기준과 증명의 정도가 다릅니다. 학폭 여부는 학교폭력예방법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 “사귀는 사이였다”, “평소에도 그랬다”는 항변 역시 그 자체로 동의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그때 그 장소에서 거부 의사가 있었는가’입니다.
- 피해학생이 교사에게 즉시 말하지 않은 것이 동의의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그 이유는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였습니다. 신고가 늦었다는 사실 자체를 불리하게 읽지 않아야 합니다.
- 무엇보다 이 사건의 무대는 수업시간의 교실이었습니다. 반복적으로 일어났는데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 “무혐의가 나왔다”는 주장을 학폭 판단의 근거로 쓰지 않았는가
- 교제 관계라는 사정을 동의의 증거로 치환하지 않았는가
- 신고가 늦은 이유를 피해학생에게 불리하게 해석하지 않았는가
- 수업시간 중 반복된 접촉을 교실에서 관찰할 수 있었는지 돌아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