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조사한 그 선생님이, 심의 자리에도 앉아 있었다
학교폭력책임교사가 조사하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위원으로 의결에 참여했습니다. 학교는 “형식적으로 진행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1무슨 일이 있었나
2019년, 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A학생은 같은 학년 B학생과 같은 기숙사 방에서 생활했습니다. 4월 28일 B학생이 A학생 등으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학교장에게 신고했습니다.
학교의 학생생활부장교사 겸 학교폭력책임교사가 조사를 맡았습니다. 관련자들을 면담하고 확인서를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5월 16일 자치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 교사는 회의에 출석해 피해·가해 학생과의 상담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위원으로 참석해 의결에 관여했습니다.
위원회는 A학생에게 제1호 서면사과, 제2호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제3호 학교에서의 봉사 5일을 요청했고 학교장은 그대로 처분했습니다.
위원 구성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위원회는 총 9명이고 그중 과반수인 5명이 학부모대표여야 했습니다. 3월 15일 학부모전체회의에서 2명을 뽑은 것은 적법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기존 위원 1명이 사임하자, 학교는 3월 22일 학급별 대표로 구성된 학부모대표회의에서 후임 1명을 뽑았습니다.
A학생은 행정심판에서 학교봉사 5일만 취소받은 뒤, 남은 서면사과와 접촉금지 처분의 취소를 구해 소송을 냈습니다.
- 2019. 3. 15.학부모전체회의에서 학부모위원 2명 선출 — 적법
- 2019. 3. 22.기존 위원 사임 후 학급별 대표회의에서 1명 선출 — 위법
- 2019. 4. 28.B학생, 학교폭력 신고
- 학폭책임교사가 면담·확인서 수령 방식으로 조사
- 2019. 5. 16.자치위원회 — 같은 교사가 보고하고, 위원으로 의결
- 2019. 5. 20.학교장, 1호·2호·3호(학교봉사 5일) 조치
- 2019. 8. 26.행정심판, 학교봉사 5일만 취소
- 2020. 12. 15.법원, 남은 처분도 모두 취소
2무엇이 다투어졌나
- ① 학부모전체회의 대신 학급별 대표회의에서 위원을 뽑을 수 있는 ‘곤란한 사유’란 무엇인가
- ② 사건을 조사하고 보고한 교사가, 같은 사건의 심의 위원이 될 수 있는가
3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①에 대하여. 학교는 “전체회의를 연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다시 열기는 곤란했다”고 항변했습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임 후 위원회가 열리기까지 약 2개월이 있었으므로 그 사이 전체회의를 열기 곤란했다고 보기 어렵고, 곤란했다고 볼 다른 사정에 관한 주장도 자료도 없다는 것입니다.
②에 대하여. 법원은 먼저 그 교사의 지위를 짚었습니다. 학폭책임교사는 신고 사안을 조사하고 위원회에 상담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 있으므로, 전문상담교사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한 것입니다.
자치위원회에는 제척·기피·회피 제도, 발언 내용 비밀 유지 등 위원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하는 자리와 심의하는 자리를 한 사람이 겸하면 그 장치가 무의미해집니다. 따라서 해당 사건의 상담·조사를 수행한 사람은 위원 자격 자체가 없습니다.
학교의 “형식적으로 절차를 진행하고 사안을 설명했을 뿐 다른 위원들 의견에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데 그쳤다”는 항변도 배척되었습니다. 법원은 그 주장 자체가 오히려 독립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정이라고 했습니다.
A학생 측이 기피신청 안내를 받고도 기피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개별 사안의 제척·기피 문제가 아니라 그 직책을 맡고 있는 한 구조적으로 위원 자격이 부여될 수 없다는 의미이므로, 기피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자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결국 자격 없는 학부모대표 1명과 이 교사가 위원으로 참여했고, 적법하게 선출된 학부모대표가 과반수에 미달했습니다. 위법하게 구성된 위원회의 의결에 따른 처분은 위법합니다.
4교실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나
- 조사한 사람과 심의하는 사람은 분리합니다. 제도가 바뀐 지금도 이 원칙은 유효합니다. 학교의 전담기구 구성과 역할 분담을 점검할 때 기준이 됩니다.
- “형식적으로만 참여했다”는 해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오히려 그 말을 독립성을 의심할 사정으로 읽었습니다.
- 당사자가 기피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방어가 되지 않습니다. 구조적 하자는 당사자의 부작위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 ‘곤란한 사유’는 기간으로 판단됩니다. 2개월의 여유가 있었다면 곤란했다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 사안을 조사·보고한 사람이 심의에 관여하고 있지 않은가
- 전담기구 구성원과 심의 참여자의 역할이 문서로 분리되어 있는가
- 위원 선출 절차와 일정 기록이 남아 있는가
- 예외 절차를 쓸 때 ‘곤란한 사유’를 소명할 자료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