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복을 고르러 모인 자리에서, 학폭 위원이 정해졌다
학부모들이 메신저로 연락해 음식점에 모였습니다. 연주복을 고르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이 추대되었습니다.
1무슨 일이 있었나
2017년 3월 23일, 고등학생 A학생이 학교 앞 바닷가에서 B학생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안건이 접수되었습니다.
4월 7일 학교장은 자치위원회를 열어 이를 심의·의결했고, 4월 10일 A학생에게 출석정지 5일, 특별교육이수 10시간, 보호자 특별교육 4시간을 명하는 처분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 위원회를 구성한 방식이었습니다. 판결문에 적힌 그 ‘학부모회의’의 실상은 이랬습니다 — 학부모들이 메신저를 통해 자체적으로 음식점에 모여 학생들이 입을 연주복 등의 선정을 협의한 자리였습니다.
학교 측의 공식적인 개최 안내도, 회의 안건도, 위원 선출에 관한 안내도 없었습니다. 일부 학부모만 참석했고, 학부모위원과 자치위원회 위원은 희망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추대되는 형식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학부모회의 당시 이미 위원회가 심의할 대상이 발생해 있었습니다. 학교 측은 그 학부모회의 개최에 관한 어떠한 자료도 보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 2017. 3. 23.A학생이 학교 앞 바닷가에서 B학생을 폭행했다는 안건 발생
- (그 무렵)학부모들이 연주복 선정차 음식점에 모인 자리에서 위원 추대
- 2017. 4. 7.자치위원회 개최·의결
- 2017. 4. 10.출석정지 5일 + 특별교육 10시간 + 보호자 4시간 처분
- 2019. 3. 13.법원, 처분 무효 (취소가 아님)
2무엇이 다투어졌나
- 위원 선출 절차의 하자가, 그에 따른 처분을 무효로 만들 정도인가
- (취소사유와 무효사유는 다릅니다. 무효가 되려면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야 합니다)
3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법원은 먼저 왜 법이 구성 절차를 정해 두었는지부터 짚었습니다. 청소년은 아직 법질서에 따른 분쟁해결에 익숙하지 않고 성장하는 교육과정에 있으므로, 조치는 학교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절차와 내용으로 이루어져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치요청권을 갖는 자치위원회는 그 구성이 법령이 정한 절차대로 이루어져 학교구성원들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얻어야 합니다.
이 사건의 학부모회의는 그 요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사전에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학부모들이 민주적 의사를 개진·숙의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선출된 사람은 법령이 예정한 ‘학부모전체회의에서 적법하게 선출된 학부모대표’로 볼 수 없습니다.
무효를 주장하는 쪽이 하자의 중대성과 명백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법원은 둘 다 인정했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령을 위반한 하자가 중대하고, 학부모위원이 학부모 전체의 의사로 선출된 것으로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결주체 선정절차가 무효인 이상, 그 의결이 적법하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진 처분도 무효입니다.
4교실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나
- 절차 하자는 결론이 옳아도 처분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그것도 취소가 아니라 무효였습니다. 무효는 기간 제한 없이 언제든 다툴 수 있습니다.
-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 학교가 아무 자료도 보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소집 안내, 안건 공지, 참석자, 선출 과정을 남기지 않으면 “제대로 했다”를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 ‘희망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추대했다’는 사정은 변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차가 형해화되었다는 증거로 읽혔습니다.
- 덧붙여, 이 사건의 무대는 ‘학교 앞 바닷가’였습니다. 학교폭력은 ‘학교 내외’에서 발생한 것을 포함합니다. 교문 밖이라고 심의 대상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 위원 선출을 위한 공식 안내문을 사전에 보냈는가
- 회의 안건과 위원 선출 사실을 미리 공지했는가
- 참석자·선출 과정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가
- 심의 대상 사안이 이미 발생한 상태에서 급히 위원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